가끔, 전 세계의 눈과 귀가 한순간에 멈춰 서는 사건이 있습니다. 인도 아메다바드에서 발생한 에어인디아 171편 참사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290명에 달하는 사망자, 그 가운데 의사 기숙사까지 덮친 참극. 그러나 그 처참한 기록 속에서 단 하나의 이름이 전해졌습니다. 좌석 11A, 영국 국적의 비슈와슈 쿠마르 라메쉬.
‘살아남은 한 사람’이라는 말은 사실 그 자체로 말문을 막게 만듭니다.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이 안도인 동시에, 그가 이 재난의 유일한 기억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또 다른 비극입니다.
라메쉬 씨의 증언은 단순합니다. “이륙 30초 후, 큰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사실, 이보다 더한 설명이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625피트 상공, 고작 몇 초 만에 벌어진 참사는 승객이든 조종사든 감지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살아남았지만, 함께 타고 있던 형제의 생사는 알지 못합니다. 가족에게 “괜찮다”고 전화를 걸었지만, 그 말 뒤에 숨은 죄책감과 충격은 감히 우리가 짐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죽음 속에서 우리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또 다시 보잉 787 드림라이너인가?
왜 기체 이상은 몇 년째 반복되고 있는가?
왜 희생은 늘 평범한 시민들인가?
미국, 영국, 인도의 조사 기관이 합동 수사를 시작했지만, 이미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는 ‘조사 중’이라는 말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라메쉬 씨가 가진 생존의 기억은, 단지 기적인 동시에 세상에 대한 질문입니다.
왕의 애도 성명, 각국 정상의 위로, 항공사의 보상 약속은 어쩌면 이 슬픔 앞에 너무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한 명의 생존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가 기억의 목격자가 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비슈와슈 라메쉬의 이름은 이제 단순한 생존자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는 2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대신해 ‘왜’라는 질문을 던질 권리와 책임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물음 앞에서 대답을 요구해야 합니다.
기적처럼 살아남은 한 생명을 통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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