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더 이상 현실과 가상이 분리되지 않는다. 스크린 속 존재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고, 실제 사람들은 그들을 응원하며 열광한다.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의 허구의 아이돌 그룹들이 미국 음악 차트를 점령했다는 소식은, 가상과 현실이 완전히 섞인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K-pop의 인기가 높다는 뉴스 이상의 이야기다.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진짜라 부르고, 무엇에 마음을 내어주며, 어디에 시간을 바치는지를 묻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어릴 적엔 만화영화 속 주인공이 내 친구 같았다. 그러나 그때는 분명히 ‘만화’라고 선을 긋고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디지털 문화에서는 이 경계가 희미해졌다. Huntr/x와 Saja Boys라는 가상의 K-pop 그룹이 현실의 BTS와 블랙핑크를 넘어서는 성과를 올리고, 그 음악이 실제 음원차트에 올라서 전 세계에 울려 퍼진다.
가상의 인물이 현실의 음악 시장을 정복하는 이 사건은, 우리의 정체성이 점점 더 디지털 네트워크에 묶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유튜브, 스트리밍, SNS를 통해 우리의 감각과 마음이 끊임없이 자극받는 동안,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아진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무엇을 느끼게 하느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 현상이 단순한 오락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뒤에는 블랙핑크와 BTS의 앨범을 만들어낸 프로듀서들이 있다. 현실에서 검증된 ‘K-pop 공식’을 가상 아이돌에게 이식하니, 전 세계가 반응한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유전자 조작처럼 문화적 유전자 조작이 성공한 사례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문화적 콘텐츠가 인간의 삶과 떨어져 있던 공산품이었다면, 이제는 현실의 일부로 흘러들어와 우리의 정체성, 감정, 열망과 결합된다. 가상세계에서의 성공은 현실세계의 권력과 영향력으로 곧장 이어진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누가 진짜 가수이고, 누가 허구의 아이돌인가 하는 질문은 점점 사라진다. 대신 ‘이 노래가 나에게 무엇을 주는가’, ‘이 스토리에 내가 왜 몰입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이제 가상 아이돌이 우리의 삶에 침투해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준다. 아마도 인간이란 본래 그렇게 이야기에 홀리는 존재일 것이다. 허구든 현실이든,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것이 곧 진짜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경계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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