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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상사

교사 앞에서 축구화로 아이의 배를 밟는 학교!

by 마음이 가는 대로 202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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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체벌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들 — 학교 폭력, 권위의 실종 그리고 어른의 부재"

 

교사도, 아이도, 무력해진 교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교권’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꺼리게 되었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모들이, 가장 먼저 교사의 손을 묶었고,

그 손발이 묶인 교실에 남은 것은 교사의 가벼운 말과 무거운 침묵, 그리고 침묵 속에서 자라난 폭력이었다.

 

오늘도 또 하나의 폭력이 드러났다. 
축구화를 신은 아이가, 같은 반 친구의 배를 짓밟는다.
교사는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는 쓰러지고, 다른 아이들은 그 옆에서 축구를 계속한다.
이것이 우리가 만들고 방치한 교실의 민낯이다.

 

체벌 금지와 권위 실종

‘체벌은 폭력이다.’
이 얼마나 정당한 문장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문장을 지금은 조심스럽게 되뇌인다.
왜냐하면 그 문장이 모든 교사의 손을 묶어 버렸고, 아이들을 또래 집단의 질서 아래 맡겼기 때문이다.

 

분명 교사의 감정적 체벌은 잘못이었다.
하지만, 가장 감정적인 청소년 시기보다는 훨씬 이성적이다.

 

이것은 단지 ‘체벌 금지’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오직 자기 자녀로만 보는 부모들, 그 이기적인 보호 본능이 공동체 교육의 균형을 무너뜨린 것이다.

 

나는 내 아이를 제도권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어른은 없고, 또래들의 눈치와 서열로 작동하는 곳—그곳이 바로 지금의 ‘학교’다.
그곳에서는 배움이 아니라 ‘힘의 구조’를 먼저 익히고, 침묵하거나 가해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체벌이 있었다.
그 체벌이 있기에 감히 친구를 집단으로 왕따시키거나, 운동장에 쓰러진 아이 옆을 축구공을 차며 지나치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어른’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부모들이, 그 어른을 무너뜨렸고, 지금은 그 부재 속에서 또 다른 아이가 병상에 누워 있다.

 

나는 아이를 한국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아이는 지금, 존중과 질서가 살아 있는 작은 공동체에서 자라고 있다.

 

가끔은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그곳에서 충분한 사회성을 배울 수 있을까요?”

 

나는 이렇게 답한다.
“그 사회성이, 지금 누군가의 배 위에 올라탄 축구화에서 자라고 있다면,
차라리 그 배움의 기회를 포기하겠다.

 

어른이 사라진 교실엔 침묵이 자라고, 침묵 속에 폭력이 피어난다.
그 폭력을 키운 건 아이가 아니라, 몇몇 부모의 호들갑에 교사 권위를 빼앗은 우리 모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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