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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상사

김건희, 김건희, 아직도 김건희... 나는 김건희라는 이름을 잊고 싶다

by 마음이 가는 대로 2025.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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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김건희, 김건희, 아직도 김건희…”

어느 순간부터 내 하루의 시작이, 그녀의 이름으로 열린다.

신문이건 유튜브건, 어디를 켜도 또 다시 흘러나오는 그 이름. 나는 이제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낯이 뜨겁다.

그리고 그 낯 뜨거움은, 단순한 개인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이 나라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번져간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영부인이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에, 국민과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할 사람.
그러나 그녀는 늘 국민의 곁이 아니라, 조명 아래에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이 물었다. “그 여배우 누구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우리 영부인이야…”
그 순간, 조국이 한없이 작아지고, 내가 한없이 초라해졌던 시간.

 

물론, 사람은 외모를 가꿀 수 있다.
자신을 꾸미고 아름답게 사는 것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영부인의 자리에 스스로 앉으려 했다면, 최소한의 무게감을 가졌어야 했다.
무엇이 국정인지, 무엇이 정치인지, 무엇이 민심인지.

 

아름다움에 시간을 쓰기보다, 행사 하나에 담긴 ‘취지’를 먼저 읽었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꾸만 ‘공적 자리’가 아닌, ‘사적 브랜드’처럼 느껴졌다.
국민의 얼굴이 되어야 할 사람이, 국민의 가슴에 오히려 그림자를 드리운 셈이다.

 

결국 남편까지도 탄핵되었다.
역사에 남을 이름이 되었고, 그 옆에 그녀의 이름도 나란히 적히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가나 싶었는데, 다시 등장한 ‘입원’이라는 장면.
서울 아산병원이라니.
수많은 암 환자들이 몇 달씩 기다려도 병실 하나 잡지 못하는 그 병원에,
그녀는 ‘지병 치료’ 명목으로 단숨에 들어갔다.

 

이쯤 되면 분노보다 허탈감이 먼저 온다.
그렇다고 정말 병세가 심각한 것이라면… 내 성급한 분노가 미안할 일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심각한 우울증이라면, 구치소가 오히려 안전한 곳일 수 있다.”
이 말이 마음에 박혔다.
왜냐면 지금, 국민 모두가 우울하니까.

 

비단 그녀만의 병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앓는 증상이니까.
민주주의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권력이 남긴 후유증,
그것이 화병이 되어 온 국민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김건희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이름을 듣기 싫다.

 

어디를 틀어도 그녀의 이름, 어디를 봐도 그녀의 뉴스.
그녀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상징은, 이 나라 정치의 부끄러움,
무너진 공정과 특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거울이 되었다.

 

부디, 이 수치의 시간을 넘어,
이제는 다시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기를.
잊히는 것이야말로,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공적 예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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