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늘 뒤로 미루어진 약속처럼 느껴진다. 그 약속은 언제나 “조금만 더 지나면”이라며 말끝을 흐리곤 한다. 그러나 2025년 6월, 중동의 심장부에서 또 한 번 그 약속이 무너졌다. 이란과 이스라엘, 두 적대국이 수십 년간의 외교적 포위와 음영전략을 거쳐, 이제는 정면으로 서로를 향해 미사일을 쏘아대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 전쟁을 뉴스로만 소비할 수 없다. 핵무기, 종교, 국경, 정체성, 패권, 그리고 문명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이 충돌은 우리 시대가 던진 가장 날카로운 질문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이 말해주는 진짜 이야기는 단지 '이스라엘 대 이란'이 아니라, '우리는 이 세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1. 전쟁의 원인보다 중요한 것
이스라엘과 이란은 단순한 이웃 국가가 아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여긴다.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 혁명의 수호자로,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주의의 결실로, 존재의 기반부터 서로의 정당성을 부정한 채 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먼저 쐈느냐"는 전쟁의 기술적 시비일 뿐, 그들의 시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충돌을 예고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갈등의 '원인'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갈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갈등은 단지 반복되고 확장되는 구조일 뿐인가?
2. 국제 정세의 교차로에서
이번 전쟁은 단순한 양국 간의 충돌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외교적 방패 속에 있었다. 그 결과, 이 충돌은 미국-중국 간의 패권 전쟁의 일부처럼 움직인다.
게다가 전세계가 에너지, 물류, 식량, 기술, 종교 등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21세기 세계질서에서, 중동의 미사일 한 발은 서울의 경제와 베를린의 정치, 브뤼셀의 안보를 흔드는 파급력을 가진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더 이상 ‘나와 무관한 전쟁’을 구경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3. 핵과 인간의 존엄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을 차단하기 위한 명분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 과정에서 와이즈만 연구소 같은 과학의 전당이 불타고, 팔레스타인계 민가가 무너졌으며, 이란 수도 테헤란의 시민 수만 명이 북쪽 산악지대로 피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핵은 단지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문명의 진보까지도 파괴하는 힘이 되었다.
문제는, 그 핵을 둘러싼 논의에 ‘국민’이란 단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정치, 군사, 외교가 논의될 때 정작 '사람'은 뒷전이 되었다. 전쟁이란 언제나 '한 국가의 이익'을 위해, '많은 개인의 삶'을 담보로 삼는 잔인한 시스템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은 중동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관리해 왔는가에 대한 결과이며, 동시에 경고다.
인류는 기술과 문명의 진보로 우주를 탐사하면서도, 자신의 이웃과는 여전히 벽을 세우고 있다. 우리가 만드는 무기는 점점 정교해지고 있지만,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이 전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는 아직도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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