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겁니다. “내가 나라를 이끄는 사람을 직접 뽑는다면, 얼마나 달라질까?” 대통령 이재명은 그 물음을 제도화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름하여 ‘국민추천제’. 장차관, 공공기관장, 심지어 대법관까지. 이제는 권력의 중심부에 국민이 직접 손을 대보자는 시도입니다.
민주주의의 실현, 국민 참여의 확대—그럴듯한 슬로건이 울려 퍼집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무대 위에서 선언하는 공연이 아니라, 제도와 절차 속에서 그 본질이 드러나는 삶의 방식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겁니다. “국민이 참여한다고 다 민주적인가?”라는 물음이죠.
'인기'와 '책임' 사이의 간극
우리는 종종 ‘국민의 뜻’을 절대선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선택이 언제나 옳은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닙니다. 공직자 추천이 트위터와 이메일, SNS 댓글을 통해 이뤄진다니요. 그 과정이 과연 전문성과 책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관료제는 원래 인기 없는 구조입니다. 투표로 뽑는 게 아니라, 전문성과 경력을 바탕으로 임명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정치는 ‘의사결정’이지만, 행정은 ‘실행’이기 때문입니다. 인기가 행정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추천제’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는 효과적일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면입니다. 추천된 인사가 공직기강비서관실을 거쳐 임명된다고 해도, 추천 자체가 일종의 ‘정치적 선언’으로 작용한다면 이미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압박이 생깁니다.
현실은 냉정합니다. 추천 게시판에 연예인을 올리는 사람들, 정파적 인물을 장관으로 올리는 네티즌들, 여기에 정치권의 프레임 전쟁까지 얹히면, 어느새 제도는 ‘참여 민주주의’가 아닌 ‘댓글 정치’로 변질됩니다.
대통령이 제시한 ‘국민 참여’의 이상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상을 제도화할 때 필요한 건 열정이 아니라 절제입니다.
‘국민참여’가 아니라 ‘국민책임’이 되어야
민주주의의 핵심은 ‘참여’보다 ‘책임’입니다. 추천할 권리보다 중요한 것은, 그 추천이 만든 결과에 대해 책임질 자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시도는 분명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제도는 언제나 현실의 언어로 작동합니다.
국민추천제는 책임 있는 국민이 있는 나라에서만 꽃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직자를 추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잘못 역시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민주주의는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보다, 그 권리의 결과에 책임지는 태도 속에서 진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제도가 그저 또 하나의 포퓰리즘 도구가 되지 않으려면, 제도에 앞서 사람의 성숙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추천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무엇을 위해, 어떤 사람을, 누구의 책임 아래 추천할 것인가?”
그 질문이 없는 추천은, 결국 정치 쇼로 끝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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