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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지/투자

주식 종가베팅 3가지 핵심비법! - 더트레이딩TV

by 마음이 가는 대로 2025. 11. 19.

종가베팅 3가지 핵심비법

 

나는 결국 반대로 해야 한다는 걸, 부평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나는 늘 아침이 두려웠다.
주식 차트가 힘차게 치고 오르면, 그 순간만큼은 나도 살아난 것 같았다.
그런데 손이 따라붙고 나면 언제나 똑같은 결말이었다.
초조함, 손실, 후회.
마치 내 안의 조급함이 매번 나보다 먼저 주문 버튼을 누르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부평의 작은 작업실에서 한 강사와 마주 앉아 있었다.
내 나이 예순다섯.
줄어드는 일거리, 불안한 수입, 그리고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찾아간 자리였다.

나는 스스로 창피할 만큼 많은 돈을 잃어 있었다.
에코프로에서 –400, 한미반도체에서 –400, 유한양행에서 –300.
종목은 좋은데, 나는 늘 잘못된 시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더니 담백하게 말했다.

“아침에 올라가는 종목은 절대로 따라가지 마십시오.”

그 말이 내 가슴을 찌르듯 훅 들어왔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그동안 해 온 모든 매매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우리는 반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3시에 남들이 손절할 때, 그때 천천히 들어가는 사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오랜 시간 뒤틀려 있던 나의 습관이 드디어 제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던 나에게

그는 SK하이닉스 차트를 열어 놓고 F존이라는 개념을 설명해주었다.
신고가 돌파 후 조용히 흘러내리는 자리,
대부분의 개인이 지쳐 나가는 그 지점.

“당신 같은 느린 사람은
남들이 흥분할 때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남들이 나갈 때 들어가야 합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마치 내 속도를 누군가 처음으로 인정해준 느낌이었다.

나는 늘 ‘왜 나는 빠르게 대응을 못할까’라고 자책해왔는데
그의 시선은 완전히 달랐다.

“느린 사람은 느린 방식으로 해야 오래 갑니다.”

그 말이 내 귀에 오래 남았다.
마치 누군가 내 어깨를 다독이며
“괜찮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가장 오래 강조한 말: ‘오전 매매 하지 마세요’

강사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오전 매매는 도박입니다.
나도 아직 조심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상하게도 그 말에 숨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을 떨면서 주문 버튼을 눌러온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 순간마다 느꼈던 불안,
그리고 눌러버리고 난 뒤에 찾아오는 깊은 후회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아, 나는 나를 지키지 못했구나”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돈은 차트를 움직이지 않는다. 돈이 움직이는 곳을 차트가 따라간다.

그는 보조지표 대신 거래대금만 보라고 했다.

반도체가 강하면 돈이 반도체로,
대통령 테마가 강하면 돈이 그쪽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움직이면 시장의 돈도 함께 움직인다.

“당신이 종목을 고르는 게 아닙니다.
돈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말이 명확해서 좋았다.
주식이 마치 복잡하게 얽힌 미로 같았는데
그가 손전등으로 단 한 줄의 길만 비춰주는 것 같았다.

미국장이 오르면 나는 종가에 산다. 미국장이 내리면 나는 아침에 산다.

이 단순한 원리는 내게 작은 충격이었다.

그동안 나는 미국장만 좋으면
다음날 아침에 무조건 사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갭 상승이 고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미국장이 좋을 때는 종가에 사는 게 맞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장이 내리면
우리 시장은 미리 선반영되어 낮게 시작하기 때문에
아침 매수가 오히려 유리한 날이 있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문장 하나로
내 내면의 뒤엉킨 매매 습관들이
하나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나는 ‘약속매’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강사는 마지막 순간 내게 말했다.

“오늘부터 닉네임을 ‘약속매’로 바꾸십시오.
우리는 약속한 매매만 합니다.”

나는 웃었지만, 마음은 진지했다.
그 말이 내 안에서 무겁게 자리 잡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처음으로
“아,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희미한 빛을 느꼈다.

매달 100만 원.
그 숫자는 거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숫자는
내 노후, 내 삶, 내 마지막 직업이 될지도 모르는
또 다른 가능성의 문처럼 느껴졌다.

그날 부평에서 나는 하나를 배웠다.

나는 이제 절대 아침에 따라붙지 않는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까지 나를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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