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지/음악

페퍼톤스를 처음 들은 날.

마음이 가는 대로 2025. 7. 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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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톤스를 처음 들은 날.

 

페퍼톤스를 처음 들은 날을 기억한다.
어떤 계절이었는지조차 흐릿하지만,
그들의 노래가 내 마음에 불현듯 바람이 되어 불어온 순간만은
유난히 또렷하다.

 

아마 내가 가장 어울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사소한 실패에도 쉽게 부서지고,
아무도 보지 않는 방 안에서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지,
그 끝없는 증명을 되풀이하곤 했다.

 

낙관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조금은 우스워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때 내 귀에 들어온 노래,
“세상은 넓고, 노래는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
허탈하게 웃음이 났다.
그래, 노래는 아름답지.
그렇다고 해서 이 무료한 현실이
단숨에 바뀌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상했다.
낡은 이어폰 너머 들려오던
그 두 사람의 다소 삐걱대는 목소리는
어쩐지 너무나 진지해서,
내 회의조차 잠시 주춤하게 만들었다.
어딘가 어색하고 투박한 음성이었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누구도 가볍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토록 담담하게,
그러나 끝내는 환하게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이.

 

우울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마치 계절의 한 부분처럼,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조용히 들이닥쳐서는
모든 색을 잿빛으로 바꿔놓는다.

 

그 잿빛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써 버틴다.
누군가는 음악을 꺼내고,
누군가는 기억을 붙잡는다.
나는 그 시절,
페퍼톤스를 붙들었다.

그들의 노래가 말해주었다.
희망이란 거창하거나 요란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쩌면 그것은
맑은 날에 느끼는 작은 기쁨이거나,
친구의 문득 건네는 농담이거나,
어느 날 문득 다시 해보고 싶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 사소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우울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씩 몸에 스며든다.

 

우리는 끝없는 어둠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언제라도 노래 한 곡의 힘으로
다시 빛 쪽으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어쩌면 새로운 삶이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일지 모른다.
큰 결심도, 드라마 같은 반전도 없이
다만 “날씨가 좋구나”라고 중얼이며
오늘을 한 걸음 더 살아보는 일.
그리고 그 작은 시작 앞에서
우리 마음은 언제나 다시 따뜻해진다.

 

오늘도 어울함이 당신을 누르고 있다면,
조용히 그들의 노래를 켜보라.
거기서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는 것,
충분히 기쁜 인생이 있다는 것을
분명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가
페퍼톤스를 사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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