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상사

오늘도 유재석을 보면서

마음이 가는 대로 2025. 6. 10. 14:56

유재석

 

언제부턴가 우리는 웃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어떤 웃음은 너무 작위적이었고, 어떤 웃음은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씁쓸함을 참곤 했다.
그래서일까. 유재석의 웃음은 이상하게도 ‘믿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불편하지 않고, 누구를 깎아내리지도 않으며, 스스로를 희화화하면서도 절대 자기 자신을 헐값으로 팔지 않는 그 균형감.

그는 웃음을 만들지만, 결코 웃기기 위해 사람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자세는 한 시절을 통과해 온 우리 30·50세대에게 특별한 위로였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실패하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삶. 그래서 유재석이 웃을 때 우리는 안다. 그 웃음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불안 속에서 피어난 중심

젊은 유재석은 화려하지 않았다. 짧은 성공 뒤의 긴 무명과 실패의 시간이 길었다. 그 시절 그는 자주 불안했고, 때때로 긴장했고, 겨우 얻은 무대에서의 실수들은 지금까지 희화 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그의 중심을 만들었다. 동료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자신의 실수 앞에서 웃음을 자아내며, 조금씩 대중과 신뢰를 쌓아간 시간. 그렇게 유재석은 지금의 유재석이 됐다. ‘성공한 개그맨’이 아니라, '대중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예전엔 유명세만 있으면 권력에 붙고, 사회적 약자 앞에서 군림하던 이들이 있었지만, 유재석은 달랐다. 그는 여전히 공손했고, 약자의 입장에 설 줄 알았고, 말보다 태도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한 시대의 기준이 되었다. “유재석처럼”이라는 말은, 단순히 방송을 잘하라는 말이 아니라, 정직하게 살아보자는 요청이 되었다.

이 변화는 작지 않다.
그는 개그맨이었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그를 ‘그저 웃기는 사람’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그는 ‘성실과 존중의 아이콘’이 되었고, ‘무너져가는 공정의 감각’을 지켜낸 사람으로 자리잡았다.

 

유재석은 우리 세대의 얼굴이다.
무너질 수 있었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게을러질 수 있었지만 성실을 선택했고, 누구보다 빠르게 성공하려는 욕심보다, 오래 신뢰받는 길을 택했다.
그의 웃음은 얄팍하지 않고, 그의 성공은 운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삶을 보며 ‘공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 단어가 현실에서는 너무 멀게 느껴질 때가 많았지만, 유재석을 보면 그 단어가 아직 이 사회에 가능하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나는 유재석이 웃을 때, 내 마음도 덩달아 놓인다. 그가 웃는다는 건, 여전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고, 진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증거니까.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도 유재석이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가 웃는 얼굴로 오래오래 우리 앞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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